2017년 5월 21일. 신앙생활의 삼 요소(히10:3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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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믿음생활의 삼요소

                                                              성경 : 히10:36-39절


 

  불교를가리켜 산속의 종교라고 하고, 기독교는 거리의 종교라고 합니다. 이유는?

불교는 입산, 수도, 득도, 성불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고,   기독교는 현실, 역사, 삶 구원에 중점을 두기 때문입니다.

불교가 명상과 사색을 중요시하는 정적(靜的)인 종교인 반면에, 기독교는 변화와 구원과 전진을 중요시하는 동적인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말씀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신앙생활의 태도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교훈한 말씀입니다.  특히 뒤로 물러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신앙은 전진입니다. 앞으로 나아감 입니다.

고통이나 실패나 어려움, 핍박 같은 어려운 환경이 신앙생활을 위협하더라도 그런 것들 때문에 뒤로 물러서면 안된다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성도의 믿음과 신앙은 살아있는 믿음과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이며 어떤 신앙이 살아있는 신앙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믿음!.. 하나님 말씀대로 실천하는 신앙!입니다

죽은 자는 움직일 수 - 없습니다.   일어나 앉지도  -못합니다.   앞으로 나아가거나 걸어갈 수도 - 없습니다.

영적인 원리도 이와 똑 같습니다. 죽어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살아있는 믿음, 살아있는 신앙의 사람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 아침에 “앞으로 나아갑시다”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담대함 입니다.

속담에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수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사람이 깊은 산속에서 범(虎 -호랑이)을 만나면 왠만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정신이 혼비백산할 것입니다.(동물원 -무서운 호랑이)  겁나고 무서워서 덜덜 떨 것입니다. 그러면 호랑이한테 당합니다.  정신을 잃으면 호랑의의 밥이 됩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그래야 살수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담대함입니다.  본문 35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34절을 보면 그 당시 기독교인들이 예수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아무 잘못도 없이 옥에 갇히고 재산을 빼앗기고 직장에서 쫓겨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을 후 삼년 반 적그리스도가 또 할 것입니다.

적 그리스도의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도 못하게 하고 직장도 못다니고 시장에 가서 물건도 구입을 하지 못합니다. 무엇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도를 믿는 믿음과 신앙 때문에!..... 

그런데 주님은 그런 것들 때문에 용기를 잃어버리거나 믿음을 포기해 버리면 상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담대해야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히11:6절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본문 히10:35절과 히11:6절을 연결시키면 담대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힘쓰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최고의 상(賞)으로 노벨상이 꼽힙니다.

이 노벨상은 세계의 모든 지성인들이 받기를 소망하는 상입니다.  노벨(Alfred Bernhard Nobel)은 스웨덴의 화학자이며 발명가였습니다.

1863년 다이나마이트 즉 폭약을 발명했습니다. 그는 다이나마이트 외에도 특허를 355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공장을 설립하여 폭약을 제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폭약으로 인하여 공장이 폭파되었습니다. 동생과 종업원 4명이 죽었습니다. 그는 그 후 폭약 때문에 갑부가 되었습니다

알프레드 노벨은 자신이 발명한 다이나마이트가 산업용으로 사용되기 보다는 군사적으로 사용되면서 폭약으로 인하여 무기가 만들어지고 전쟁이 나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감을 보면서 폭약을 발명한 일을 후회 했습니다.  그래서 노벨은 죄책감으로 참회하는 뜻에서 죽기 전에 유언을 했습니다.

그의 유언을 따라 1901년 노벨상 제도를 만들어 시상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는 죽기 1년 전인 1895년 11월 27일 유언장을 통해 "인류복지에 가장 구체적으로 공헌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며 자신의 유산 3100만 크로네를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에 기부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땅위에 노벨상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➀물리학 ➁화학 ➂생리의학 ➃문학 ➄경제 ➅평화 부분에 걸쳐 시상을 하고 있습니다. 2016년도 기준으로 미국이 363명, 영국이 123명, 독일이 100명, 프랑스68명, 일본25명, 중국12명, 이스라엘12명, 대한민국 김대중씨가 평화상....시상식은 매년 12월 10일 스웨덴 국왕이 임석한 가운데 진행되며 수상자에게는 금메달과 22만 달러 정도의 상금을 줍니다.(한화 약 2억4천 2백만 원). 세상에서는 이 상을 가장 최고의 영예로운 영광의 상으로 여깁니다. 모든 학자들의 선망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이 땅의 노벨상으로는 감히 비교 할 수 없는 큰 상이 우리에게 준비되어있습니다.

무슨 상입니까? 하나님나라의 영원한 상급입니다. 신앙의 용기와 인내로 자신의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받는 상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노벨상과는 비교도 할 수가 없습니다. 천군천사가 부르는 승리의 노래 속에서 하나님이 상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영원합니다. 생명의 상급입니다.

노벨상이나 올림픽 금메달 상은 지상에서만 그 가치와 영예가 인정되는 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영원한 상입니다.  영광과 가치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원히 인정되고 평가받는 상입니다. 영원한 상이란 없어지지 않는 상, 녹슬지 않는 상, 그 가치가 영원히 존속되는 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상은 담대한 신앙으로 끝가지 믿음을 지킨 성도들에게 주십니다. 우리 모두 이 귀한 상을 받기까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신앙의 경주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

                                                                    2. 인내 입니다.

36절을 보면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인내는 그리스도인이 지녀야할 가장 소중한 품성임과 동시에 덕목입니다.

“인내”(휘포모넨, ύπομονεν)- 세상 모든 사람이 지녀야 할 품성이기도 합니다.  본능으로 살아가는 짐승도 단번에 성을 내거나 자기감정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이성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인간은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태리가 낳은 세계적인 바이얼리니스터 니꼴로 파가니니 (Niccolo Paganini)가 어느 날 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주도중 바이올린 줄 하 나가 끊어졌습니다. 숨을 죽이고 있던 청중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남은 세 줄로 연주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줄이 또 끊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두 줄로 연주를 계속했습니다.

그때 세 번 째 줄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끊어졌습니다. 그는 잠시 연주를 멈추더니 한손으로 바이올린을 높이 치켜들며 "줄 하나와 파가니니"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노련한 솜씨로 연주를 했습니다.

그의 연주가 끝나자 관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렇습니다. 포기하면 안됩니다. 인내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세 줄이 끊어지고 단 한 줄만 남았더라도 그 한줄 믿음으로 성공을 연주해 낼 수 있는 용기와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삶의 현실이 힘이들고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포기하거나 중단하면 안 됩니다. 주님 바라보며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라는 말 처럼  마지막 승리는 인내하는 자에게주어집니다. 롬5:3-5절⇒“환난은 인내, 인내는 연단, 연단은 소망, 그 위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됨이니”

그렇습니다. 신앙의 인내 없이는 하늘의 소망도, 하나님의 사랑의 부어짐도,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함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가 TV에 보면 남극에 사는 팽귄을 보게 됩니다.  암놈 펭귄이 알을 낳으면 숫놈 펭귄이 날개로 덮고 따뜻하게 하여 새끼가 나오게 한다고 합니다.

최소한 두 달 동안 먹지도 않고 영하 40도의 한냉과 싸우며 시속 40km의 강풍을 견뎌 낸다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인내입니다. 미물도 이렇게 인내를 통하여 새끼를 부화시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인내는 너무 나약하고 무기력 합니다.

사흘만 물이 안 나오면 화를 냅니다. 갑자기 정전이 되어 한 두 시간만 전기공급이 끊기면 난리가 납니다. 엘리베이터만 조금 늦게 내려와도 짜증을 냅니다.

이러한 모습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신앙인의 인내도 예외가 아닙니다. 참을성도 없고, 기다릴 줄도 모릅니다. 조급해합니다. 작은 일에도 짜증내고, 신경질을 냅니다. 육신의 정욕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평을 합니다. 더 나아가 쉽게 절망하고 포기해 버립니다.

크리미어 전쟁 당시 부상으로 다리를 잘라야 하는 병사가 있었습니다.  나이팅게일이 그 병사에게 "최대한 용기를 갖고 아픔을 참아야 된다"고 말하자 그 병사는 막대기를 하나 달라고 했습니다. 그 병사는 막대기의 끝부분을 입으로 깨물면서 수술이 끝날 때까지 한마디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습니다. 수술이 끝난 후 막대기를 보니 끝부분이 거의 짓뭉개져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의미 깊은 교훈을 줍니다.

고통이나 좌절로 아픔을 겪을 때 실패나 절망으로 괴로움을 당할 때,  우리가 붙잡을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이유는 십자가보다 더 억울함도, 더 큰 고통도, 더 쓰라린 아픔도, 더 골 깊은 상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붙들 때 마음에 진정한 평화와 위로, 소망과 승리의 확신이 임합니다. 인내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지 못합니다. 인내할 때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인내의 마지막 결과는 영원한 생명의 구원입니다.

                                                                       3. 전진 입니다.

38절을 보면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했습니다.

“물러가면”(휘포스테일로타이, ύποστείληται)-뒤로 물러나다, 철회하다,움추리다 라는 뜻입니다. 뒤로 물러가는 사람의 특징은 자신의 목적이나 계획을 쉽게 철회해 버립니다.

깊은 고민이나 생각이나 연구나 검토가 없이 너무 쉽게 일을 계획하고, 너무 쉽게 그만 두는 사람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부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까지 뒤에서 잡아당깁니다. 끌어 내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바네아 바란 광야에서 12명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12명 중의 10명의 정탐꾼들이 바로 뒤로 물러가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밭에나 길가에 나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굼뱅이와 지렁이를 보게 됩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꿈틀 꿈틀 대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하루만 살고 죽고마는 하루살이도 앞으로 날아갑니다. 자동차, 비행기, 사람도 다 앞으로 갑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애굽을 떠나 40년 만에 가나안 땅에 도착했습니다.

참으로 지루하고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애굽으로 되돌아가자고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출14:12절-이스라엘백성들은 홍해바다 앞에서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광야에 서 죽는 것보다 낫겠다고 소리치며 불평했습니다.

출16:3절-신 광야에 이른 그들이 광야에서 굶어죽는 것보다는 애굽의 고기가마곁에서 고가와 떡을 실컷 먹다가 하나님의 손에 편히 죽는 것이 좋을 뻔했다고 원망했습니다.

 IS백성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전진에는 관심이 없고 되돌아 갈 방법만 모색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의 신앙은 후퇴가 아니라 전진입니다. 뒤로 물러감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감입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➀과거 지향적인 사람입니다.

늘 옛날 일만 생각하고 말합니다. 지난날의 향수와 미련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과거에’, 나어렸을 때는‘ 말이 일상어로 사용됩니다.

➁현실주의자들입니다.

육신의 정욕만족을 최고로 여깁니다. 이들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필요 없습니다. 육신의 쾌락과 정욕만족에 삶의 초점을 맞추고 현실을 엔조이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하루 육신을 즐기며 즐겁게 쾌락을 만족하며 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현실주의자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당장 오늘 나한테 무슨 복이 오는가? 나한테 무슨 유익이 있는가? 손해인가? 이익인가? 따지고 계산을 합니다. 바로 현실주의자들인 것입니다.

➂미래지향적인 사람들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뒤로 물러서지 않고 전진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출애굽 시키신 가장 큰 목적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가나안이라는 미래지향적 복지를 향해 전진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젓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의 미래, 아닌 영원한 복지임)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회만 주어지면 뒤로 되돌아갈 궁리를 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은 그것을 싫어하셨습니다.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히10:28절-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면 힘들고 느리고 괴롭더라도 뒤돌아서거나 중단하면 안 됩니다.

범죄 심리학자들은 범죄자에겐 귀소본능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기가 죄지은 현장을 남몰래 둘러보고픈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죄를 저지른 현장을 배회하다가 붙잡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달라야 합니다. 신앙은 전진입니다.  한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안 됩니다. 고여 있는 물은 오염이 되고 썩습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우리 믿음과 신앙은 밑에서 위로 솟구쳐 박차고 올라가야 합니다. 무엇처럼? -독수리의 날개 침같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 - 명예를 얻고 재물을 모으고 권력을 잡는 일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 계신 영원한 천국 즉 가나안입니다.

되돌아가면 목적지에 못 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노래 불렀던 IS백성들 처음 출 애굽한 60만명은 애굽으로 못 갔고 가나안 땅에도 못 들어 갔습니다. 광야에서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단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 외에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약속하신 젓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일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산 교훈이 됩니다.

주님 바라보고 전진하십시다. 곁, 좌우를 돌아보고 사람보고 경치 구경하고 즐기다보면 전진하지 못합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신앙의 최종 종착역은 하나님나라입니다. 그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것이 우리 모든 성도들의 신앙의 참 된 목적과 방향과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즉 성도의 신앙생활 세 가지 요소는?  

1.담대함입니다.

2.인내입니다.

3.전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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