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6일 말세 성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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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말세 성도의 삶 

                                               성경: 롬 11:11-14절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를 가리켜서 말세(末世)라는 말들을 합니다.
말세는 문자적으로 말하면 ‘세상 끝’이라는 의미를 지닌 말세는 대단히 중요한 성경적인 용어입니다. 주님께서도 마13:39, 40, 49절 등에서 말세를 ‘세상 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의 말세는 예수님의 초림 - 재림까지의 시기가 다 말세에 포함이 됩니다.
 지금 우리는 말세 중에서도 말세인 말세지말(末世之末)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이 시기는 “자다가 깰 때”라고 지적을합니다.
➊영적인 눈으로 시대를 분별하고 ➋정신을 바짝 차리고 ➌주님의 다시 오심을 대망하며 사모하며 기다려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의 말대로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바로 주님의 재림과 심판이 임박한 시대라고 하면 무엇을 어떻게 힘써야 할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시간을 귀하게 사용해야 합니다(11절)

         

왜! 시간을 귀하게 사용해야 합니까? 왜! 때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까?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투토 에이도테스 톤 카이론, τοτύτο είδότες τόν καιρόν).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강조하는 시간의 개념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일반적으로 연대기적으로 흘러가는 시간(chronological time)을 가리키는 명사 ‘크로노스’(χρόνος)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뜻의 “의미의 시간”을 지칭하는 “카이로스”(καιρός)를 사용했습니다. 즉 카이로스는 크로노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의미를 지닌 어느 한 시점을 지칭합니다.
 그러니까
크로노스의 시간은 흘러가는 연대기적 시간을 말하고, 카이로스의 시간은 그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느 한 시점을 지칭합니다.
 
모세의 예) 40년 미디안 광야의 시간은 -크로노스의 시간인 반면에,
   
모세가 호렙산 불붙은 가시떨기 나무 아래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시간은 카이로스의 시간인 것입니다. 시간에는
1)자연적인 시간 -내가 의식을 하든지 의식을 안 하던지 간에 나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2)생물학적 시간-인간의 삶, 수명과 연관되어있는 시간이 생물학적 시간입니다.
3)철학적인 시간-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또 이루어 보려고 노력하고..... 또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살려고 고민하는 시간 4)신학적인 시간-神學(theology), 신학적인 시간(쎄올리지 타임, theology time)은 제 3의 時間, 즉 하나님의 시간이라고도 말합니다.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은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가장 가치있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즉 주님의 못다 사신 삶을  내가 대신 살아드리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2. 어둠의 일을 벗어야 합니다(12절)

 

‘밤“(뉙스, νύξ)-해가 진 시점만이 아니라, 어두움이란 의미가 강한 낱말입니다. 상징적으로는 죄악으로 암울한 상황을 가리킵니다.
“깊고”(프로에콮센, προέκοψεν)-밤이 이미 많이 지났다, 이미 아주 깊어졌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두움의 일들은 어떤 것들인가? 13절-“방탕, 술취함, 음란, 호색, 쟁투, 시기”등입니다. ‘방탕’(코모이스, κώμοίς)-술에취해 잡담하며 시종 떠들어 대는 행위를 지칭함. ‘술 취함’(메다이스, μέθαις)-술에 취하면 이성을 잃고 행동을 합니다. 불량배. ‘음란’(코이타이스, κοίταις)-음행을 행하는 것, θ보다 더 사랑하는것(영적음행). ‘호색’(아셀게이아이스, άσελγείαις)-색을 탐하는 것, 이성을 밝히는 것. ‘쟁투’(에리디, έριδι)-서로 다투어 싸움. ‘시기’(젤로, φήλω) 잠14:30절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3.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합니다(14절下)

 

   육신의 일이 무엇인가? 우리 육신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일들입니다.
바울은 갈5:19-21절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➀
음행더러운 것 ➂호색우상숭배 ➄술수원수를 맺는 것 ➆분쟁시기분냄 ➉당 짓는 것분리함이단 투기술 취함 방탕함 또 ⑯그와 같은 것들이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러한 것들에서 멀리 떠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범은?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풍습, 습관, 유행, 유혹, 세상풍조에 빠지면 안 됩니다.  육신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을 박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힘써야 합니다.  육신의 일이 왜 생기는가? 그 원인이 무엇인가? 어디에서부터 시작이 되는가?바로 내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면 그 무엇이 우리 마음을 그렇게 만드는가? 육신의 정욕입니다. 육신의 애정과 욕망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움직이고 이끌어가는 그 주범입니다. 
  그래서 잠4:23절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지킬 때 -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을 박게 됩니다. 마음을 지킬 때 -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몸,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위에서 피로 값 주고 사신 몸이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누가 계십니까? 성령님께서 영으로 임재 해 계십니다.
 
바울은 고전6:19절-“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0절-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4.빛의 갑옷 입기를 힘써야 합니다(12절)

 

 12절-“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4절-“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세상 사람들은 일류 브랜드의 옷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동대문 시장 안 갑니다. 시장 옷 보다 백화점을 옷을 찾습니다.

지갑, 명품 백, 벹트, 각종 악세사리등도 가장 좋은 것으로 구입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입을 옷은 달라야 합니다.
세상의 일류 디자이너가 디자인 한 명품 옷이 아니라 이보다 더 고급스럽고 더 차원이 높고 고 품격적인 옷을 입어야 합니다. 무슨 옷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옷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입으셨던 옷! 십자가 위에서 입으셨던 붉은 피로 물드셨던 그 옷!... 을 입어야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옷입니다. 오래 참음의 옷입니다. 원수까지도 용서하시는 참 사랑의 옷입니다. 이 옷의 이름은 빛의 갑옷입니다. 롯데 백화점, 현대 백화점, 그랜드 백화점 같은 곳에서는 판매 불가입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입을 수 있는 인격의 옷입니다. 이 옷! 예수 그리스도의 옷! 즉 빛의 갑옷을 입으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가?
 
교만이 틈 탈 때-예수님의 겸손의 능력으로 물리치는 겸손의 능역이 나타납니다.
거짓이 올라올때 -예수님의 생명력인 정직과 진실함으로 승리합니다..

포악한 환경이 속에서-온유함으로 극복함과 동시에 덕행의 열매를 맺습니다.
원수 앞에서-용서와 사랑으로 극복하고 온전히 승리하게 해 줍니다. 이러한 빛 된 삶이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뜻입니다.
어디까지? -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 말씀에 아멘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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