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고전15:12 -19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앞에 놓고 묵상과 기도로 보내는 사순절의 기간을 지나보냈습니다. 주님은 금요일 밤과 토요일(안식일)을 무덤에서 보내시고 주일! 오늘 새벽에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다시 사셨습니다. 이 기쁨은 2천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져 왔고, 또 우리 주님 오실때까지 계속 되어질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오늘도 내일도 영원토록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불교에는 부활이 없습니다. 석가모니는 버섯나물을 먹고 복통이 나서 병들어 죽었습니다.
공자도 부활하지 못헸습니다.
“철학은 죽는 연습이다 라고 말한 소크라테스도 죽음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기독교에는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새벽에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1. 부활의 확실성 입니다(12절)
예나 지금이나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헬라 철학사상을 가진 자들은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헬라인들은 ‘몸은 죽음으로써 끝나고 영혼은 불멸 으로 계속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현대에도 과학에 물든 사람들은 부활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비합리적이라고 말합니다.
무신론자 프랭크 모리슨 “예수의 부활은 그의 제자들이 조작한 사기극이다”
데오도르 카일“예수의 시체는 썩었고, 제자들에게 나타난 예수는 환상이었다”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는 믿는 것이지, 과학적 사고와 철학적 논리와 인간의 사상이나 생각으로 판단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주님 부활은 인간이 만들어낸 픽션(fiction, 허구)이 아니라, 팩트(fact, 사실)입니다.
루이스 벌콥은 자신의 저서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e)에서 부활의 성질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그것은 삼위 하나님의 역사이다. 육신적이고 신체적인 부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신학의 첫 번째 출발점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후 실망하고 좌절하여 각기 뿔뿔히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용기를 얻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 것은 예수님의 부활 때문입니다.
2. 부활이 주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죽음? -관심 없습니다. 왜 그런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죽음 이후의 심판과 부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 ... 한 가지는 우리 인간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 이후에는 그리스도의 심판대(고후5:10), 하나님의 심판대 (롬14:10) 앞에 서게 됩니다.
만약에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 -헛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헛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는 것? -헛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확실합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고전15:17절“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그리스도께서 오늘 이 부활절에 부활하셨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제사를 받으셨다는 의미이며, 그의 피로 말미암아 온 인류의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부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과거에는 역사적인 사건이며, 현재, 지금도 계속 진행되는 과정이며,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가장 큰 능력의 역사요 소망인줄로 믿으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의 부활을 소망해야 합니다. 부활이라는 낱말은 그 앞에 죽음이라는 낱말을 수식합니다.
즉 부활은 죽음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죽음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부활은 다시 사는 일입니다. 일시적인 생명, 한시적인 육신의 생명을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관문이 부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