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6일. 참 된 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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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참된 신앙생활

                                                         성경: 삼상3:1 -9절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기를 우리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신앙생활(信仰生活), 사전적 의미는?신앙을 가지고 종교에 의지하는 영적생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생활! 하면, 가장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대체로 많은 성도들이 예배, 기도, 전도, 봉사, 헌금, 사랑실천, 헌신등을 꼽을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생활 =교회생활....이것이 많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교회 공적 예배에 출석을 잘하고, 작정기도회등 각종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11조나 다른 헌금을 잘드리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생각을합니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모습들을 가지고서는 그 사람의 신앙을 논할 수 없습니다

성도의 신앙이란! 내 평생에 걸쳐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러한 외적으로 드러나는 신앙의 모습보다는 한 차원 더 깊은 진정한 신앙생활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러한 뜻에서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하면서 예비되어진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도(道)입니다.(길입니다)

신앙생활은 헌금, 예배, 기도, 말씀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세워나가는 길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길이 신앙생활의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세워나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는 일입니다(회개, 순종, 실천).

삼상2:1-2절 엘리 제사장은 들을 수 있는 귀가 막혀 있었습니다. 엘리는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가 이미 영력을 상실했음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가 지도력(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영적 능력을 소유해야만 합니다. 이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따라서 목회자들, 어느 모임이든지 리더들은 끊임없이 영력을 공급받도록 힘써야 합니다.

영력(靈力)을 공급받으려면 적어도 두 가지 일을 힘써야 합니다. 성경을 연구(묵상)하는 일이고 기도생활입니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또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어야 합니다.

 

삼상3:1-2절 엘리 제사장은 들을 수 있는 귀가 막혀 있었습니다. 3:4-8절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삼상16:14-18절사울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를 못했습니다. 23:1-5절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을 똑똑히 듣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비극은?

➀헌금 적게 드리는 것! 아닙니다.         ➁기도를 유창하게 잘 못하는 일도 아닙니다.

➂찬송 잘 부르지 못하는 것! 아닙니다.  ➃작은 교회 사람 수가 적은 것?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비극은: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이것이야 말로 가장 큰 비극이요 기장 큰문제인 것입니다(신앙생활 50년, 60년 했어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 출석을 합니다. 교회마다 제자훈련, 성경공부등을 많이 가르쳐서 성경말씀도 많이 압니다. 설교말씀들도 너무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힘(零力)이 없습니다. 작은 시험에도 너무 쉽게 넘어집니다. 매사를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을 수 있는 귀가 막혀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13:14-17절

14절"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절"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 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절-"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절"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 하였느니라"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대제사장은 주님말씀을 듣지를 못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주님! 즉 성자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큰 죄악입니까?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죄악은 없을 것입니다.왜 이렇게 하나님 앞에, 인류역사앞에 엄청난 죄악을 범하게 되었는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주님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막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눅18:9-14절(두 사람의 기도 내용)

바리새인의 기도토색X, 불의X. 간음X, 감사.. 이레에 두 번씩 금식, 기도..자랑, 세리의 기도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저는 죄인이로소이다. 왜! 기도합니까? 내가 기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내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기 위해서? 아닙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소리, 음성, 영감)을 듣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내 신앙생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일할 때나, 운전할 때나, 잠잘 때나, 기도할 때나, 운동할 때나, 전도할 때..내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왜! 울어야 하는가? 신세가 처량해서? 아닙니다. 속이 상해서? 아닙니다. 사업이 잘 안되고, 건강이 나빠져서? 역시 아닙니다. 다른 사람한테 무시당해서?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할 가장 핵심적 이유는?  하나님의 소리를 잃어버린 내 자신의 비참함 때문에 울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민족 출애굽의 위대한 인도자였던 모세의 위대함은?  인물이 아닙니다. 애굽의 문물을 배운 지식이 아닙니다. 또 뛰어난 용병술도 아닙니다.
모세의 위대함은? -
그가 하나님앞에 나아갈 때마다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데 있습니다

홍해 바다 앞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출14:15-18절).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출16:4절)

출16:4-5절"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제 육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안식일 준수... 그렇습니다.

백성들이 불평 원망할 때,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똑똑히 듣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내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일은?  순간순간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일입니다(양심에...)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순종할 때, 하나님 앞에 나를 바르게 세워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복음성가 뜨겁게 부르고, 감사예물 올려드리고,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봉사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다 필요합니다.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보다 더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 있는데, 그 일이 바로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워나가는 일"인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닮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합니다.

직접 귀로 들을 수도 있습니다, 양심을 통하여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또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오기도 합니다. 또 사물을 통해서, 세상의 징조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목회자가 되는 것 아닙니다. 지도자가 되는 일도 아닙니다. 만약에 지도자가 되었으면서도 엘리 제사장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막혀 있다라고 한다면 이는 비극입니다. 우리는 엘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사무엘처럼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노(努)입니다(힘쓸 努. 애씀의 흔적)

 

여기서 노(努)는 나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서 하나님의 영감이 머물게 하려는 애씀의 노력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빼 놓을 수없는 것이 하나님의 영감입니다(할머니 남편X).  영감(靈感, inspiration)-갑자기 떠오르는 직관적ㆍ창조적 번뜩임. 인스피레이션.

□왕하2:1-9절엘리사가 엘리야를 길갈 -벧엘 - 여리고 - 요단가 즉 엘리야가 승천하는 자리까지 끝까지 끈질기게 쫓았습니다.(파파라치X, 학파라치 X )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붙었던 이유는? 엘리야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영감을 갑절로 받기를 소원했기 때문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왕하2:9절"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그렇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쫓았던 이유는? 명예X, 이익X, 능력X) →하나님의 영감 즉 인스피레이션(靈感, inspiration)을 갑절로 받기를 원했기 때문인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엘리야(왕상17:1-7)아합과 아세벨의 낯을 피하여 요단 앞 그릿시냇가에 숨어있을 때에도,에 하나님은 까마귀를 통하여 엘리야에게 떡과 고기를 공급해주셨습니다. 

 

왕상17:5-6절→"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 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왕상17:8-16절시돈 땅에 있는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3년 동안 거할 때에도 엘리야는 하나님의 영감을 잃지 않았습니다.

엘리사도 병들어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영감이 엘리사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교회만 다닌다고 해서 신앙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영감이 늘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세례요한→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생활했던 것도 θ의 영감을 잃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 였습니다(세속에 물들어 살면 영감X, 할머니가옴)

베드로와 가룟유다 →또 같은 날 사명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3년 뒤에는 베드로는 →순교자의 영광을 얻은 반면에,

가룟유다는 →비참하게 최후를 마치고 말았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무엇이 이 두 사람을 이렇게 갈라놓았습니까? 나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서 하나님의 영감이 내게 머물게 하려는 노력을 베드로는 끊임없이 노력을 한 반면에. 가룟 유다는 육신의 정과 욕망을 쫓아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만에 빠진 우리를 진리가 지켜줄 수 없습니다. 형식에 빠진 우리를 진리가 지켜 주지 못합니다.  음란과 세상 향락에 빠진 나를 진리가 보호해 주지를 못합니다.  음란과 세상 향락과 교만과 거짓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는 ➀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➁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감이 내 속에 머물러 있게 해야 합니다.

그리해야 어둠속에서, 죄 가운데서, 세상 유혹가운데서 나를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의 위대한 인도자인 모세의 이력서에 남아있는 내용은,

바로궁중에서의 40년 엘리트 교육 받은 사실? 아닙니다.  출전한 전쟁에서의 승리한 사실? 아닙니다.  IS백성들의 40년 광야길 인도한 일? 아닙니다.

모세의 이력서에 남아있는 두 가지 가장 위대한 일은?

❶매순간 시간 분초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었다는것 모세는 80세때⇒120에 죽을 때까지 더욱 더 풍성한 말씀을 들고 있었습니다.

❷그리고 그 속에 하나님의 영감이 늘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두 가지가 모세의 이력서의 가장 위대한 내용인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3.행(行)입니다.(최선을 다하는 삶)

 

여기서 행(行)은 ⇒'나를 아끼지 않는 뜨거운 열심을 의미합니다.

모세 ⇒IS 백성들을 위해서 자신을 내어 주었습니다.(24장로의 반열에 오름)

예레미야⇒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리라 하면 내 중심에 불붙는 것 같다.

렘20:9절"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 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 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사도바울도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 같아서 열심을 다해서...

고전9:16절"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 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손양원목사(여수 애양원)나병 환자들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습니다(사랑실천 + 열심 =보통 사람은 하루도 못함)

어거스틴의 고백록주님!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예수님을 저를 위해 주셨을 때, 온 우주에 나 하나 만을 위해서 내어 주셨나이다.  

어거스틴은 그 사랑에 감격하여 일생을 주님을 위해 뜨겁게 헌신했습니다.  결과 신구교의 뿌리이자 중세교회의 위대한 교부로 변화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위해서, 또 이웃을 위해서 나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는 뜨거운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믿음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삶임과 동시에 신앙인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뉴스에 종교인들이 비 종교인들 보다 더 인색하다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귀 담아 들어야 할 일이라고 생긱을 합니다.

 

마더 데레사주님! 저는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주님을 봅니다...

바울사도는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해산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라고 入.... 갈4:19절"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 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모세, 예레미야, 사도바울, 손양원목사, 어거스틴, 마더 데레사수녀등...이분들의  공통점은? 사랑입니다. 희생입니다. 섬김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나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는 뜨거운 열심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리스도인의 신앙의 길, 즉 신앙생활은?

1.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세워나가는 일입니다(즉 길, 道입니다)

2.자신을 쳐서 하나님의 영감이 머물게 하려는 힘씀입니다(즉 노력, 努입니다)

3.나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는 사랑실천입니다(즉 행, 行입니다.

내 자신의 삶속에 道, 努, 行을 실천하는 사람이 참 신앙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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