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3일. 인생의 유라굴로(행27장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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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인생의 유라굴로

                                                성경: 행27:9 -20절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삶을 살아가다보면 원하든, 원치 않든지 간에 수많은 어려움이라는 광풍 즉 난관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름하여 인생의 유라굴로입니다. 이 유라굴로라는 광풍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이 다 일어납니다. 때와 장소와 시간과 시대와 역사를 가리지 않고 발생합니다.

개인의 삶에 유라굴로의 광풍이 불기도 하고, 가정에, 기업이나 사업에, 또 국가나 사회에 이 유라굴로의 광풍이 불어 닥칩니다.

 

일례로)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지기도 하고, 한진해운처럼 해운업의 부도로 말미암아 많은 근로자들이 실직하기도 했습니다.  무엇입니까? 개인의 건강에, 해운업에 유라굴로의 광풍이 몰아쳤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유라굴로의 큰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즉 최순실 게이트(Gate -문)입니다.

개인의 비리차원이 아닙니다.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관들, 문체부등이 연관되어있고 거기에 국회의원들, 각 시민단체들, 촛불시위 참가자(11/8일, 조선일보기사 -시위대 일가족 4명이 5만원씩 20만원을 받았다고 합니다)들 모두가 다 대통령하야를 외치며 이 유라굴로의 광풍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여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작금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모습임과 동시에 현상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크고 작은 수많은 유라굴로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유라굴로의 광풍을 지혜롭게 피해갈 수가 있는가?

또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게 되는 원인이 무엇인가?  오늘 아침에 읽어드린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내 인생의 유라굴로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사람의 말을 더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일행이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게 된 원인을 우리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일은 우리 인생의 삶에 있어서 매우 귀중한 교훈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을 호송하는 백부장등 276명의 일행이 유라굴로의 광풍을 만나 14일간 갖은 고초를 겪게 된 첫 번째 원인은 바울의 권고를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울을 하나님의 종으로 생각하지 않고 죄수로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능력주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종으로 여겼다면 그들은 바울의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누굽니까? 바울은 길리기아 해변 가까운 다소에서 나서 자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대하여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제1차, 2차, 3차 세 번의 전도여행과 더불어 많은 항해의 경험을 가진 사람입니다.

고후11:25-26절“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그렇습니다

바울은 그 누구보다, 배의 선주보다도 더 많은 바다의 항해를 했고, 파도의 위험을 감내했고, 배가 세 번 씩 파선할 정도의 극심한 위험을 바다위에서 험한 파도와 싸우며 지낸 사람입니다.

그런데 백부장이 이러한 바울의 말보다 선주의 말을 더 믿은데서 유라굴로의 풍랑은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대통령이 최순실씨의 말을 더 믿은데서 부터 지금 우리나라에 불어닥친 유라굴로의 광풍이 예견되어 있었던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백부장이 왜 바울의 말을 믿지 않았는가?  그 것은 바울이 죄수의 신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인생의 삶에서 이러한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져도 소홀히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일례로) 하나님께서 성경 어떤어떤 장의 말씀을 읽으라‘ 라고 말씀하시면 그때 처음은 좀 읽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지나면 까마득히 다 잊어버립니다. 처음상태로 되돌아갑니다. 제 모습입니다.

또 하나님의 종들의 말을 사람의 말로 생각하고 가볍게 여길 때도 많습니다.

1:9절-“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 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사51:16절에도-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의 말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육적이고 세상적이고 인본주의적인 누룩이 섞인 말은 걸러내야 합니다. 받아들이면 내 영혼이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무엇보다도 영적분별력을 가져야만 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중심 편에 서서 빛과 어둠, 영적인 일과 육적인 일, 하나님의 일과 세상의 일, 하나님중심과 정욕중심의 일을 분별하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음성과 사람의 말을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바울을 호송하는 백부장 일행 276명이 유라굴로의 큰 광풍에 14일간이나 시달린 이유가 바로 하나님 종, 바울의 말보다 선주, 사람의 말을 더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은혜교회의 성도들은 사람의 밀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더 먼저 귀를 기울이고, 세상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 먼저 순종하므로 우리 인생길에서 만나게 되는 유라굴로라는 광풍의 성난 파도를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  말씀의 사람!  하나님 중심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2.멀리 바라보는 눈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마음속에 육신의 애정과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욕심이 앞서게 되면 잃는 것이 많습니다. 왜 그런가? 의욕이 앞서고 어떤 성과를 빨리 얻고자 하면 일을 서두르게 됩니다. 마음이 급하면 멀리바라보고 생각하는 마음과 생각의 눈이 어두워집니다.  바로 당장 눈앞의 발등만을 바라보면  멀리 내다보는 눈을 상실하게 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속담에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습니다.   또 아무리 급하다고 해서 실을 바늘 허리에 매서 못쓴다‘고 했습니다.  또 이 뿐만이 아닙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가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러한 말 모두가 다 그만큼 어떤 일을 할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K -sport와 미르재단의 대기업 기부금을 받는 과정에서 급하게 그것도 너무 급하게 일방적으로 추진을 했기에 일이 더 커진 것입니다

오늘 백부장 일행이 바로 이러한 실수를 했습니다. 즉 산 전체를 보지 못하고 눈앞의 숲만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선주와 선장은 겨울을 지내기에 좁은 미항보다 좀 더 넓은 뵈닉스항구로 가는 것을 더 좋게 여겼습니다. 여기에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게 되는 원인의 시발점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항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상조건입니다(비행기, 자동차등 다 마찬가지임). 선장과 선주는 기상조건보다 자신들의 욕망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일 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합니다.

좁은 미항보다 좀 더 넓고 편리한 뵈닉스 항구로 가려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람마저 순풍이 불어옵니다.  13절에 보면 -‘남풍이 순하게 불매’ -첫째 날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당시 잠깐 불어온 남풍, 즉 순풍에 속았습니다. 출항을 결행했습니다  여기에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노도를 만나게 되는 인간의 얕은 생각의 함정이 있습니다.

선장과 선주는 일시적인 풍향보다는 계절적인 기상 원리에 근거해서 항해를 했어야하는데 이 모든 가장 기본적인 절차를 무시했습니다. 즉 무엇입니까?

항해의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원리보다 지엽적인 현상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들이 당한 재난은 가장 기본적인 원리원칙을 무시한데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일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상황이 이와 똑 같습니다.

대통령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을 더 신뢰하고, 하나님 종들의 말보다 한 친밀한 개인과 논의하고 상의한데서 작금의 국가적인 유라굴로의 광풍이 불어닥치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멀리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근시안적의 눈은 일을 그르치게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앞을 멀리 내다보는 눈은 하나님 말씀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데서 시작이 됩니다.

매사에 사람과 말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가장 먼저 아뢰이고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를 통해서 멀리 앞을 내다보는 우리의 눈이 열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숲만 바라보면 그 것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웅장한 산, 높고 크고 깊고 넓은 그 산 전체를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눈을 들어 멀리 있는 천국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의 권세나 명예나 지식이나 재물이나 쾌락 같은 것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또  세상일들을 바라볼 때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판단하고 분별하는 영적인 눈을 가져야만 합니다. 오늘날 크고 작은 모든 인생의 실패는 멀리 바라보지 못하는데서 시작이 됩니다. 또 육적이고 세상적이고 육신의 정욕적인 욕망에서 시작이 됩니다.

지금 우리사회의 큰 광풍! 촛불집회, 정권퇴진운동이라는 유라굴로가 생기게 된 배경은 바로 몇 몇 사람의 물욕, 권력욕, 명예욕과 더불어 개인의 사사로운 정에 얽매인 것이 그 원인입니다.

무엇입니까? 그들은 멀리 내다보지를 못했습니다. 그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했 습니다.  결과는 276명의 사람들이 14일간 깊은 바다 유라굴로의 광풍 속에서 시달리고 고생하듯이, 지금 우리나라 온 국민이 눈만 뜨면 최순실 게이트, 유라굴로 라는 광풍 속에 다 휩쓸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멀리 내다보십시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 명예, 재물보다 멀리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십시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 하나님나라 입구에 하나님의 심판대, 그리스도의 심판대, 백보좌 심판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서 사람을 속이고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고하더라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면 다 드러납니다. 마음의 생각, 동기, 일의 과정, 결과등 모든 것이 다 적나라하게 다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이익에 급급하기보다 멀리 하나님의 심판대를 바라보고 이 땅에서 성실하게 정직하게 진실되게 살아가기를 힘쓰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3.나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우리 인생은 작은 돛단배로 큰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크고 작은 파도가 배를 괴롭히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시련과 고난과 역경이 찾아옵니다.

때로는 사업적으로, 때로는 건강으로, 때로는 인간관계의 관계적인 측면에 어려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입니다. 왜 우리 인생에서 이러한 고난이 그치지 않는 것인가? 우리가 받는 고난의 종류

➀욕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이때는 말씀 앞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면 회복될 수 있습니다.

➁애매히 받는 고난도 있습니다(벧전2:19).  이는 연단과 훈련을 통해 우리의 성장을 위해 허락하신 고난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인내함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➂복음을 위해 받는 고난도 있습니다.  가장 귀한 아름다운 고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이러한 고난에 참여했습니다.  히11장에 기록 된 믿음의 선진들이 이 과정을 통과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믿음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카타콤의 동굴속에서 이 고난 의 터널을 다 통과했습니다.

모세는 40년이라는 긴 시간을 미디안 광야에서 연단의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모세를 이렇게 연단시키셨는가? 그것은 모세를 하나님의 대언자로 삼아 430년 전 아브라함과의 약속(창15:13)을 성취하시려는 하나님의 원대하신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인의 연단은 금보다 귀하여 우리 안에 남아있는 불순물을 태우고 걸러내는 용광로와 같습니다.

욥23:10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바울은 항해 도중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결국 배는 침몰하지만 배에 탔던 사람들은 바울을 통해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바울이 로마행은 죄 때문에, 어떤 큰 죄를 지어서 죄수로 호송된 것이 아닙니다. 유럽전도의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명을 감당하는 길에서도 고난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바울은 출항을 만류했지만,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신뢰하여 출항하게 되었습니다(10-11).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를 결정해야만 합니다.

내 인생의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살아가시겠습니까?

인간의 방법입니까? 세상 지식입니까? 과학이나 학문입니까? 아니면 인생의 노하우 즉 경험입니까? 아니면 나와 친밀한 사람의 조언이나 충고입니까?  아닙니다.

내 인생의 크고 작은 모든 결정! 내 삶의 모든 기준은 반드시 하나님 말씀에 두어야 합니다.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 말씀을 더 신뢰해야 합니다(행27:23-25).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그냥 아무렇게나 사용하시지 않으십니다. 먼저 단련하십니다. 고난의 가시밭길을 걷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유라굴로라는 환경을 통하여 우리를 다듬고 만드십니다. 그렇습니다. 내 인생의 유라굴로 무서워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이라는 험난한 바다를 살아가다보면 유라굴로라는 시험과 환란과 풍파는 언제나 있기 마련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바다가 잔잔하고 평온합니다. 그런데 늘 ~ 항상 ~ 아닙니다. 

언제 어느 때 어디에서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고 큰 폭풍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문제는 이 유라굴로라는 환란, 풍파, 시험, 역경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과 신뢰,

두 번째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하나님의 지혜와 도우심을 간구하는 기도

세 번째는 그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려는 의지의 결단!...

이 세 가지를 잘하면 유라굴로의 어떤 풀랑도 다 넉넉하게 피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더 감사한 것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 받고 쓰임 받는 사람으로 만들어져 나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연단 없는 도구, 농기구, 연장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다 철공소 풀무불 속에서 녹아지고 달구어지고 망치로 얻어맞으면서 다듬어진 결과물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인생의 위기는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위기를 대처하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고난과 역경, 시험과 풍파, 환란과 좌절... 이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길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 있습니다. 기도 안에 있습니다. 내 인생의 유라굴로!.... 누구나 다 있습니다. 대통령에게도 있지 않습니까?  왜 이러한 유라굴로의 환란, 풍파 시험이 생기는 것인가? 원인이 무엇인가?

1.하나님 종인 바울의 말보다 선주와 선장 즉 사람의 말을 더 믿기 때문입니다.

2.멀리 보지 못하고 지엽적인 문제에 빠져들기 때문입니다(산을 보지X, 숲만 봄)

3.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실수를 통해서 나를 만들고 다듬어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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