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천국에서 큰 자
성경: 마18:1 -4절
오늘은 2012년 5월, 교회의 절기로 어린이 주일입니다. 사람들은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해놓고 가족끼리의 야외나들이 등을 즐깁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계시는 동안 여러 가지 교훈을 주셨는데 그 첫 번째 주제로 겸손과 어린아이의 귀중함에 대하여 말씀을 주셨습니다.
1.제자들의 논쟁입니다.
1절-"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이 논쟁의 불씨를 붙인 사람은 다름 아닌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입니다.즉 세베대의 아들들이 높은 지위를 구한데서 비롯된 제자들 사이의 논쟁이 시작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제자들의 심령상태(영적, 육적)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우리 중에 누가 큰지 논쟁하게 된 배경에는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세 제자만 뽑혀(베드로, 야고보, 요한)서 변화산에 올라간 일(12명 가운데 3명만 데리고 가셨음)과 베드로만 성전세 사건에 관련된 일등이 그 저변에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남은 제자들은 시기 +질투성의 지배를 받게 되었음) 제자들은 유대교의 공적사상((公積思想)에 젖어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큰지를 논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잘보십시오,
예수님의 답변은 제자들에게는 의외였습니다. 즉 높음이 아니라 겸손이었습니다.
2.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착각에 빠진 제자들에게 주님은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로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낮아지기를 원하며 겸손해지기를 힘써야 할 제자들의 마음속에 어리석고 헛된 세상의 욕심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시며 우리 주님의 마음은 안타까우셨습니다.
말썽 많은 수도원에 로렌조수도사가 원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젊은 수도사들이 원장인줄 모르고 로렌조 장상에게 식당의 접시닦는 일을 시켰습니다. 3개월이 지났을 때 감독이 순시차 수도원에 들렸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원장님은 어디계신가? 아직 부임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분명히 3개월 전에 로렌조 수도사를 임명했는데....젊은 수도사들이 아연실색을 했습니다. 아니 그럼 3개월 전에 온 노 수도사가 우리 수도원의 원장이셨단 말인가?... 그 즉시 식당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노 수도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수도원의 장상(長上)이었지만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간 로렌조 성인의 겸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부터 그 수도원은 모범적인 수도원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높임을 받기보다 낮아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로렌조 성인이 수도원의 징상으로써 가장 낮은 자리인 주방에서 접시 닦는 자리까지 내려가 삶으로 본을 보이고 실천을 했기 때문에 말썽많던 수도원이 최고의 모범적인 수도원으로 바뀌어진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아져야 들어가는 곳입니다. 하나님나라의 공식은 겸손 =천국입니다.
본문에서의 주님 마음은 제자들이 앞으로 닥쳐오는 자신의 고난과 죽음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신데, 제자들은 자신들의 스승이 당할 고난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습니다. 오히려 누가 높은 자리? 누가 대접받는 자리? 누가 우리중에 최고가 될것인가? 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조금만 틈이 보이면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기 쉽습니다.
❶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면 - 신앙에 변질이 옵니다.
3.어린아이를 영접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을 주님은 영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 시대에 어떤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인가? 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나약한 자들입니다. 헐벗은 자들입니다. 가난하고 굶주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러한 자들을 위해서 사역을 하셨습니다.우리 주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에 부자집에 가셔서 삼겹살 구워놓고 잡수신 적 한 번도 없으십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가난한 자, 소외된 자, 병든 자, 힘없고 나약한 자들을 찾아가셨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문둥병, 귀신들린 자, 혈루병여인, 중풍병환자, 소경바디매오,..등 수많은 병자들을 치료해주셨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님 당시에나 오늘의 시대에나 영적으로 어린아이들입니다.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영적으로 우리 사회의 고아와 과부의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헐벗고 굶주린 이웃의 형님이요 누나가 되어야 합니다. 자식을 돌보는 부모와 같이 세상의 모든 어린아이를 책임을 져야 합니다.이것이 교회의 영적, 사회적 의무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공식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우선순위는 부귀와 명예와 권세입니다. 그러나 천국의 우선순위는 어린아이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무슨 뜻인가? 영적인 어린아이들 즉 우리사회의 소외되고 힘없고 헐벗은 이웃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영접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부터 하나님 나라, 천국의 시작이 되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