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고난 받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는 아무런 죄도 없으시지만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실 것이라는 내용으로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죄를 그에게 담당시키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구분하면 1-3절까지는 고난 받는 메시야의 모습, 4-6절까지는 메시야가 당한 고난의 이유, 이렇게 나누어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1.메시야의 모양입니다(1-2절)
1절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두 가지 질문이 나타납니다.
➊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➋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우리의 전한 것”(리쉐메아테누, לשמעתגו) -듣다, 경청하다‘라는 뜻의 동사 ‘솨마’에서 파생되어 ‘소문’ ‘소식’을 뜻하는 낱말입니다.
“여호와의 팔”⟹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 ⟹이사야 선지자를 비롯하여 하나님의 예언적 계시를 전하는 선지자들입니다.
“전한 것”은? 선지자들에 의해 전파되어져 사람들이 들은 예언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revelation, 啓示)를 받아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선지자들이 전한 계시의 내용, 핵심은 장차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오실 여호와 종, 즉 메시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전하는 메시야의 모습은?
2절⇛“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➊연한 순 같고 ➋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➌고운 모양도 없고 ➍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➎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렇습니다. 이 사순절 기간에 십자가를 지시고 세상 인류의 죄를 담당해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한마디로 사람들 앞에 내세우거나 자랑할 만한 그 아무런 것도 없으셨습니다.
2.메시야의 고난입니다(3절)
“간고”(마케오보트, מכאכוח)⇛‘괴로워하다’ 고통을 겪다‘ 즉 많은 슬픔을 겪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질고를 아는 자“란 ?⇛’병을 아는 자‘란 의미입니다. 이 말은 모든 인간의 고통을 체휼(體 -몸 恤-근심하다, 동정하다)하셨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➊하나님 ➋사랑하는 제자들 ➌도움을 주고 고쳐주고 문제를 해결해 주었던 많은 무리들로부터 버림당했습니다.
한마디로 메시야이신 그리스도는 높임과 존경보다는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서 우리 신앙생활의 올바른 주소를 찾아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희생의 길을 걸어가시는데우리는 희생보다는 내 유익을 구하고, 주님은 온갖 멸시와 천대와 고난을 당하시는데 우리는 인정받고 높임받고 고난보다는 평안과 평탄한 길을 원하지는 않으십니까?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말과 행동이 다른 것입니다. 이율배반적인 삶에 있습니다.
입술로는- 좁은 길, 좁은 문을 외치지만 실제 삶은 - 넓은 길, 넓은 문을 원합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3.메시야가 고난 받는 이유입니다(4-6절)
죄를 지은 자는 누구를 물론하고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 죄에 대한 책임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징계로 나타났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강조되는 것이
“우리”의 개념입니다.
4절⇛“우리의 질고” “우리의 슬픔” “우리는 생각하기를”
5절⇛“우리의 허물” “우리의 죄악” 우리의 평화“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절⇛“우리는 다 양같아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5절⇛“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주님이 당하신 고난은 전적으로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한마디로 대속(代贖)의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창에 찔림을 당하신 것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때문이며, 주님을 채찍질한 것은 바로 우리자신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