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기다림의 한계
성경: 출32:1 -4절
구원받은 성도의 불신, 불 신앙, 불 순종은 하나님 앞에 범죄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돌이킬 수 없는 범죄의 현장입니다.
우리는 이 앞서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내산에 올랐습니다. 40일(日), 40야(夜를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모세가 산에서 더디게 내려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다림에 지쳤습니다.
기다림에 한계가 왔습니다.
1.기다림의 한계는 40일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 기다림에 끝은 없어도 한계는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한계의 선을 정해놓고 삶을 살아갑니다.기간도 시기도 제 각각이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그 선을 넘어버리면,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무슨 일을 할때 어느때까지..한계(限界) 즉 정해진 날이있습니다 산 아래에는 이스라엘백성들이 진을 치고 모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자신들의 생각한 대로 내려오지 않습니다.몸도 마음도 지쳤습니다. 기다림의 한계에 부딛쳤습니다. 금붙이를 모아서 아론에게 주어서 불에 녹여서 금 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의 기다림의 한계는 40일 이었습니다.
2.불 신앙은 보이는 신을 찾게 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다른 신을 만든 이유는? -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모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상을 요구한 이유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인정하지를 않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눈에 보이는 우상(神)을 요구했습니다.
오늘 날에도 교회 안에 이러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표적과 이적을 구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보고 교회에 나옵니다,
또 인간관계, 즉 졍욕에 얽매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 말씀보다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 나타나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올바른 신앙생활은 이적과 표적이 아닙니다. 나타나고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말씀, 나를 만들어주고 세워주고 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해야 합니다.
3.불 신앙은 육체의 정욕을 즐깁니다
6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이런 자들은 세상 풍조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께 대한 신령한 예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기회만 주어지면 육신의 정욕을 즐기는 신앙 생활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사물에 대한 애정의 지배를 받습니다. 성경은 예수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정과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들은 육신의 애정과 욕망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 최고의 신앙이요, 최고의 축복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구원과 한 사람을 바르게 붙들어주고 인도해주고 양육하는데는 관심이 없고 육체의 쾌락(정욕)을 위한 각종 행사에 더 관심을 쏟는다면 이는 신앙의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의 친목 단체에 불과할 뿐입니다.